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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원들은 환산정에서 먹을 갈아 글씨를 쓰며 예향 화순의 멋을 즐겼다.
류함 선생의 13대손인 류정훈 문화 류씨 종친회 사무국장으로부터 환산정 편액(扁額)에 대한 유래도 들었다.
회원들은 "백천 류함 선생의 백천 만큼 깨끗하고 고고한 선비정신에 감동을 받았고, 조상의 숨결을 지키기 위한 문중 후손의 노력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원교 이광사 선생의 환산정 편액(扁額) 갈필(渴筆) 작품을 감상하면서 서예 교육을 받은 이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화순 환산정이 최고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중허서실 중허 홍동의 원장도 ”스승인 故학정 이돈흥 선생님과 자주 환산정을 찾았다“고 술회하며 류함 선생의 백천유집(百泉遺集) 중 “동산의 소나무”를 글로 써 류정훈 사무국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화순군 동면에 자리한 환산정은 병자호란 때 맹주(盟主)였던 백천(百泉) 류함(柳涵) 선생이 524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까지 올라갔다가, 화의소식을 듣고 내려와 서암 산중 환산동(環山洞)에 한 칸의 죽정(竹亭)을 짓고 24여년 동안 은거했던 곳이다.
“환산정(環山亭)”이라는 정자 이름은 류함 선생의 큰 사위인 정직(鄭稷)에 의해 류함 선생의 행적(行蹟)에서 처음 밝혀져 구전으로 알려져 왔다.
환산정 편액은 류함 선생의 5대 종손인 도곡(道谷) 류정운(柳鼎運) 선생이 죽정 주변에 기거할 당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선생이 하룻밤 머물며 갈필(渴筆)로 남겼다.
<동산의 소나무>
동산 가운데 소나무 너를 사랑하노니 愛爾園中松 밑바탕 뿌리는 늙은 용 같고 根盤若老龍 높은 절개는 눈서리를 능가하니 高節凌霜雪 부끄러움은 복숭아 자두의 모습이어라 恥爲桃李容
▲도곡(道谷) 류정운(柳鼎運, 1702~1775) : 백천 류함 선생의 종손으로 화순향교 도유사(전교) 역임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 : 조선 4대 명필
▲갈필(渴筆) : 대나무를 이로 잘근잘근 씹어 붓처럼 만들 후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는 방식. ▲환산정(環山亭) :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35호, 화순군 동면 백천로 2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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